이스탄불 시리즈 중 2편!
이번 편에서는 이스탄불의 초기 도시 형태와,
건축물들, 얽힌 이야기들을 해볼 생각이다
자세한 정보는 다큐멘터리의 도움을 받았다
다큐 제목은 '비잔티움 - 한 도시 세 이야기(Byzantium: A Tale of Three Cities)'이다
**다큐에서 가져온 정보들은 회색,
내가 쓴 것은 검은색
First it was called Byzantium
지금의 이스탄불은 가장 먼저 비잔티움으로 불리었고,
and then it was renamed Constantinople, after the Roman Emperor, Constantine the Great.
로마의 황제였던 콘스탄티누스의 이름을 따 콘스탄티노플로 이름이 바뀌게 되었으며
And now it's Turkish, it's Istanbul.
지금은 터키의 이스탄불이 되었다.
"예레바탄 사라이(지하궁전)"
이스탄불의 시작이 그리스 문명의 영향 아래 있었다는
증거를 보여주는 장소로
비잔티움 제국*시대에 만들어진 지하 저수지이며
여기에서 과거 역사의 흔적들을 찾을 수 있다
이스탄불에는 이러한 지하 물탱크가 많지만
이 지하 저수지가 제일 크다고 한다
안쪽에 식당이나 매점같은 것들도 있었다
*비잔티움 제국은 비잔티움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후의 동로마 제국을 뜻한다
후에 학자들이 통일 로마와 구별하기 위해 붙인 이름으로
그 당시에는 비잔티움 제국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음
537AD에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지시로 지었다고 하는데
메두사의 머리가 밑에 붙어 있는 기둥들이 유명하다
재밌는게 머리가 똑바로 붙어있는게 아니라
돌아간 상태로 뒤집어져 있는데
메두사의 머리를 똑바로 쳐다보면 안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정확히 어디서 이 머리 조각들이 왔는지 알 수 없지만
놓여있는 상태를 볼 때,
원래는 이 저수지를 위해서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메두사의 머리뿐만이 아니라
저수지를 이루고 있는 기둥들도 마찬가지이다
자세히 보면 같은 모양의 기둥이 하나도 없다
각기 다른 시대의 기둥들을 가져다 썼기 때문인데
이렇듯 로마 시대의 건축물이지만
고대 그리스의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다
앞선 시대의 유물들을 빌리거나
훔쳐오는 것으로부터 도시가 탄생되었다”
이 저수지와 이후 적게 될 랜드마크들이
한 군데에 모여있기 때문에
유물들의 시간대를 따라 둘러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주변에 유명한 터키 전통 고깃집들이 즐비해 있어서
아무데서나 들어가서 먹었는데도
꽤 맛있게 먹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비잔티움, 도시의 시작"
이스탄불은 유럽과 아시아 대륙 사이를
보스포루스 해협이 가로지르는 형태로
지중해 날씨를 만끽할 수 있다
주몽이나 박혁거세 탄생 신화처럼
이스탄불에도 이 보스포루스 해협에 관련된 건국신화가 있다
“비자스(Byzas)라는 사람이 도시를 개척할 장소를 찾기 위해
아폴로 신전의 예언자에게 갔더니
‘너는 장님들이 사는 곳 반대편에 위대한 도시를 지을 것이다’
라는 신탁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무슨 소린지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일단 항해를 시작했고
이스탄불에 위치한 골든혼(Golden Horn)에 들어서자마자
그 뜻을 이해했다고 한다
한쪽에는 그리스인들이 살고 있었고
그 반대쪽에는 아무도 살고 있지 않지만
지리적으로 완벽한 장소였던 것
그 장님이 바로 그리스인들을 뜻한다는 것을 깨닫고
바로 그 장소로 가서 도시를 만들기 시작했다
자신이 만든 그 도시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게 되었는데
그 도시 이름이 바로 비잔티움”
자세히 보면 물빛이 한국과 조금 다르다
물빛은 하늘색을 닮을 텐데
감청색인 듯 에메랄드 빛이 난다
"히포드롬, 콘스탄티노플의 시작을 함께하다"
히포드롬은 과거의 경기장 및 행사장 역할을 했던 곳으로
위 사진은 그 곳의 오블리스크이다
가보면 두 개가 멀찍이 떨어져 자리잡고 있다
예전에는 경기장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도시가 만들어지고 난 처음 천 년 동안
비잔티움은 어업을 위한 항구에 불과했다
그냥 항구도 아니고 술과 음란함으로 명성이 높은 항구였다
기원전 7세기쯤 비잔티움을 방문한 한 여행가가
이곳에서는 침실과 함께 아내도 빌려준다는 기록을 남겼다고 한다
이랬던 도시가 기원전 1세기쯤에
로마의 영향권 아래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이후 한 유명한 지도자가 나타나 도시의 운명을 바꿔 놓는다
그 지도자는 기원후 330년 5월 11일
로마를 떠나 비잔티움으로 오면서
이 도시를 세계적인 도시로 탈바꿈한다
그 지도자는 바로 로마의 콘스탄티누스로
히포드롬이라는 당시 십만 명 가까이 수용할 수 있었을 만큼 컸던 광장에서
연설하며 특별한 기념행사를 연다”
지금은 가도 저 오블리스크 말고는 과거의 영광은 남아있지 않다
대신 공원의 역할을 하는 중
이곳에서 콘스탄티누스가 연설을 했을 때 사람들이 엄청 몰려왔다고 한다
"콘스탄티누스 대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왜 수도를 바꾼다는 혁신적인 결정을 했을까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기도 한 이 이름의 황제는
세상에 기독교를 널리 퍼뜨리는데 일조한 사람이기도 하다
“전략적인 선택이었다
주적인 페르시아를 상대하기 위해서라도
동쪽으로 이동해야만 했고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비잔티움이야말로
둘 모두를 통치하기에 제격이었다
게다가 히포드롬에서의 기념일이 있기 20여 년 전
서쪽 제국을 통제하기 위한 내전을 겪는 도중에
신성한 경험을 하게 된다
결정적인 전투를 앞둔 밤
하늘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
그렇게 황제는 그 전투를 이겼고
기독교를 받아들이게 된다
세계의 역사를 바꾸게 되는 결정이라고 볼 수 있다
비잔티움을 종교적인 도시로 삼으며
자신의 이름을 따 콘스탄티노플이라 부르며
소수만의 신앙이었던 기독교를
오늘날 서양 최고의 종교로 재탄생시킨다
하지만 다른 시각도 존재한다
지금은 모스크로 사용되고 있지만
기원후 4세기 때만 해도 기독교 건물이었던 사원의
12 사제들의 유물 한가운데에
자신이 죽고 난 뒤 묻힐 관을 배치했는데
이는 자신 스스로 예수 그리스도가 되려 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해 볼 수 있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해석이라고 하지만
우리가 기존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던 부분에 대한
다른 해석이라 흥미롭다
"콘스탄티노플, 기독교 도시로 재탄생하다"
사진은 미리 보기~ 다음 기회에 더 자세히 쓸 예정인데
이스탄불에 가면 거의 반드시 보게 될 바로 그 랜드마크이다
이 건물이 만들어지게 되는데에도 꽤 긴 과정이 있었다고 하는데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기독교를 국교로 정하기로 결심한다
이 때문에 황제는 콘스탄티노플의 종교적인 권위를 높이고자 한다
하지만 이 또한 어려움이 있었는데
아리우스라는 이집트 종교인의 생각이
기독교 신앙을 뒤흔들고 있었기 때문
그는 예수가 그저 한 인간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예수가 한 인간일 뿐이라면
예수의 죽음으로써 우리의 죄가 없어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
그 당시의 기독교인들에게 이것은 굉장히 큰 문제였다
테오도시우스는 이러한 생각들을 박살내기로 마음먹는다
의회에서 아리아니즘을 규탄하고
예수는 신이자 인간이라고 확언한다
이후 콘스탄티노플이 기독교 중심지의 계보를 잇게끔
투표하도록 의회를 압박한다
이로써 콘스탄티노플은 가장 위상이 높은 기독교 도시가 되었다”
이렇게 콘스탄티노플은 드높은 기독교 국가가 되었지만
아직 도시를 대표할만한 랜드마크를 가지지는 못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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